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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 이야기/테이블 세팅

갈무리 하는 시간 - 길

by 빠니미영 201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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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 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은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길. 신경림. 1990. 시집 '길'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잠시 한국에 들어가게 됐다. 유학생활부터 계산하니 청년기의 대부분, 장년에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정리하고 돌아보아야 할 것이 물건에만 있지 않다. 물론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까. 하나둘씩 차근히 매듭을 짓는 요즘 그래도 아주 잘 못 산 것 은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 본인 집에서 귀한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서로 얼굴 보자 보자 하면서도 막상 일정이 맞지 않아 미루곤 했는데 한국 귀임 소식을 전하자마자 바로 성사된 만남. 20여 년을 알고 지내지만 한결 같은 모습인 가족. 또다시 떨어지지만 각자 거한 곳에서 가열찬 시간을 보내며 더욱 성숙한 삶을 그려 나갈 것을 믿기에 시종일관 환한 웃음으로 꽉 채울 수 있었다.
식사보다는 와인을 메인으로 생각한지라 음식은 가급적 가볍고 간단한 메뉴로 준비했다.  

. 제육볶음 + 두부 데친것
. 돼지고기 편육
. 골뱅이 무침 (말린 문어, 황태채 포함)
. 잡채
. 과일 샐러드
. 해물 청경채 연두부 볶음
. 참치 전
. 연어

더운 여름, 가급적 불 앞에서 지지고 볶지 않아도 되도록 구성한 음식은 준비하는 본인이나 함께하는 사람 모두가 만족하며 즐길 수 있었고 대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까다롭게 의전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오찬이나 만찬보다는 이런 가벼운 자리를 점점 더 추구하는 걸 보면 본인도 이젠 몸이 무거워지긴 하나 보다. 
      

 

메뉴가 간단하다 보니 상차림 역시 간소하다. 

 

음식 세팅이 끝난 모습. 와인은 처음엔 저렇게 준비했지만 손님이 오고 나서 레드는 전부 교체했다. 시작 주로 한 화이트 와인은 저 당시 냉장고에서 얌전히 차가워지고 있던 상태. ^^

 

사진으로만 봐도 평소보다 참 간소하게 차린 식탁. 여름에는 이게 좋다. ^^

 

꽃꽂이도 저렇게 화병에 몇 송이 꽂은 장미와 꺾은 벤자민 가지로 대신하고.  

 

오신 손님이 들고 온 마음이다. 품 안에 가득 안기던 꽃을 갈무리하여 함께  꽃병에 꽂았더니 이렇게나 풍성하게 됐다. 그저 발걸음만 하여도 행복했을텐데. 

 

사람 맘이라는 게 받는 것보단 주는 게 더 좋다고 하더니 진짜 그렇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받기도 해 보고 주기도 해 보았는데 확실히 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이 더 컸다. 하지만 아직까지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더 많고 크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받는 것보다는 나누고 섬기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상 미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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