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를 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잘하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음식 만들기와 손님 치례. (아,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관점에서다. 자기만족, 자화자찬이라고나 할까.)
유학생 초기, 전기 밥솥에 쌀 씻어서 그냥 넣어만 놓으면 밥이 되는 줄 알고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제일 위에는 물이 동동, 가운데는 좀 설익은 밥, 제일 밑에는 새까맣게 그을은 밥을 만들기도 했던 본인인데. (압력 밥솥에는 밥을 할 줄 알았지만 당시 컨테이너로 보낸 짐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다 이런 참사를 만들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손님치례가 예사였던 분위기에서 성장한 덕분에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일단 겁을 내지는 않는 편이라 전기밥솥으로 삼층밥을 만들던 시기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 상태다. 오래 전에는 본의 아니게 국적 불명의 이상야릇한 음식을 내놓는 경우도 많았는데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이젠 손님 몇 명이면 메뉴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준비 과정부터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까지 걸리는 대략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정도까지 되었다.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준비해서 다듬고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함께 맛있게 먹으며 나누는 모든 과정이 사실 항상 쉽고 즐겁지만은 않지만, 분명한 것은 행복한 시간이라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설레면서 콩닥거릴 때는 이렇게 테이블 세팅을 하는 순간이다. 어떤 음식을 어떤 순서로 서빙할지, 어떻게 담아낼지, 코스는 몇 코스로 할지.
어려운 손님이 아닌 경우 보통 스프나 죽으로 시작해서 그 이후 서 너 코스를 더한 다음 나머지는 저렇게 식탁 위에 쭉 깔고 본인도 함께 앉아서 즐긴다.
사람 사는건 거의 다 비슷해서 한국 사람은 물론 외국 사람도 밥 한 끼 같이 하면서 마음도 나누고 정도 도탑게 쌓고 하는 거 같다.
한국의 요즘 추세는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서로 부담되지 않게 밖에서 간단히 하고 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정성 어린 마음과 손으로 준비한 것을 서로 나누는 이 시간을 포기하는 건 적어도 본인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한참 뒤의 이야기가 될 거 같다.
☞ 흑백 사진과 그 밑에 사진은 프라하에 살 때 우리 부부 포함 총 9명을 위한 테이블 셋팅과 음식이다. 7명이 모두 외국인이었는데 모두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김치만 3종류를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 아래 사진 2장은 브라티슬라바로 이사한 뒤 사무실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의 테이블 셋팅이다. 한꺼번에 모두 초대하기가 여건상 어려워서 두 번에 나누어서 치렀던 기억이.
남편 손님이 많은 편이다. 밖에서 대접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이렇게 집으로 초대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나누는 대화 속에서 본인이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 상 밖에서 하기 어려운 내용도 집에서는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상 미치르~♡
'지킴이 이야기 > 테이블 세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나누는 감사한 시간 - 엄마의 소박한 티타임 (20) | 2020.10.24 |
---|---|
다른 문화를 대하는 자세 - 열린 마음 (4) | 2019.07.03 |
갈무리 하는 시간 - 길 (3) | 2019.07.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