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에 빠져있다. 빠져 있다고 해서 주구장창 넷플릭스만 끼고 산다는 의미는 아니고 예전과는 달리 밀린 영화도 한 편씩 챙겨보고 TV에서 종방 했거나 방영 중인 드라마도 한 편씩 보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미드 슈츠 (SUITS) 에 대한 포스팅을 했다. 슈츠가 개인과 사회의 제도, 관습, 인습,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 드라마였다면 오늘 얘기하려는 드라마는 부모의 역할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 개인의 생각이니 이 글을 읽는 분의 생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모든 상황은 어디에 중심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처음에는 26살, 싱그러운 청춘의 꿈과 희망, 도전과 좌절, 새콤달콤 쌉스레한 사랑과 무색 무취 무형의 담백한 우정 등 그 여러 빛에 대한 드라마로 생각했다. 약간의 차이가 나긴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하는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드라마였다. 드라마라는 게 허구이긴 하지만 그 기반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니까. 물론 이 시선은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본인이 걸어왔던 20대 와는 또 다른 다양한 색과 향과 맛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그 안에서 보이는 부모의 역할이 더 가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요즘 스타가 되어 한창 잘 나가는 사혜준의 엄마 한애숙, 잘 나가는 거 같았는데 살짝 주춤거리고 있는 원해효의 엄마 김이영, 이 두 엄마. 그리고 사혜준의 할아버지 사영남과 아버지 사민기. 여기서는 두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선 엄마. 혜준의 엄마 애숙은 아이에게 정직한 엄마이고자 노력한다. 상황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해결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 자신의 삶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자식에게 세세한 돌봄을 할 수 없다. 대신 굳건한 믿음과 신뢰로 두 아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인물이다. 아들 혜준의 친구인 해효의 집에 도우미로 일을 하러 가게 된 순간에도 대충 덮으려 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정확한 상황 설명과 이해와 동의를 구할 정도로 나름 심지가 굳은 인물이다.
해효의 엄마 이영은 요즘 말로는 헬리콥터형 엄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해효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만들어 나간다. 이영 자신 역시 부모로부터 그런 양육을 받고 성장했다. 자신이 이만큼 잘 성장하여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 자신의 아이들 역시 자신이 자라 온 방식대로 키우면 아무런 문제 없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이어받아 고급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아빠. 혜준의 할아버지 사영남. 자세히는 나오지 않지만 젊은 시절 가족을 등한시하고 본인이 하고 싶었던 시간을 살았던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자신의 가족을 완전히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 그가 했던 일 대부분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었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가족의 행복이었다는 것이 중간중간 비춰진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빠는 무능했고 무책임했으며 무대책인 사람이었다. 아들인 사민기가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기 그지없다면 아빠인 사영남은 어떨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 서운하고 섭섭하다. 하는 일마다 뜻대로 안 되어서 너무 힘들고 속상하지만 노년에 들어 손자의 응원과 도움으로 새로운 세상에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며 드디어 자식에게 그동안 못 해준 많은 것들을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이제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열망이 공존한다.
아들 민기에 대한 아버지 영남이 이렇다면 혜준의 입장에서 본 아버지 영남은 어떨까. 어렸을 적부터 형과 계속 비교를 당해오고 형을 편애하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있다. 공부 잘하는 형은 무조건 예뻐하면서 공부보다는 다른 것을 꿈꾸는 자신은 늘 못마땅해 하고 구박하고 무시하고 폄하했다.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를 할아버지 영남에게로부터 치유받았다. 이런 아들의 마음을 민기도 느낀다. 그동안 무시하고 허황된 꿈만 좇는 한심한 녀석으로 생각했던 아들이 드디어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사실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 던져졌기에 그 안에서 성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의 방법을 깨우치고 찾은 결과를 아들에게 요구했을 뿐이다. 큰아들은 다행히 자신의 뜻을 잘 따라줬다. 공부 잘하고 성실하며 엇나가지 않은 바람직한 아들로 잘 성장해 줬다.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라는 시대에 그 어렵다는 은행에 떡 하니 취직까지 했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구석이 없다. 반면 둘째 아들인 혜준은 생각만 해도 속이 터진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데 뭐가 문제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저 녀석은 자신의 아버지, 자유로운 영혼 영남을 닮은 게 틀림없다. 꼴 보기 싫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어라, 근데... 이 녀석이 이렇게 스타, 말 그대로 하늘의 별이 되어 버렸네. 아, 망했다. 내 생각이 틀렸나 보다. 시대가 바뀐 걸 모르고 난 내가 살아왔던 방식만을 고집했다. 이를 어쩌지. 아,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내 맘을 알아줘야지. 서운하다.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아들이.
딸과 함께 보며 물어보고 싶었다. 엄마는 어떤 유형이야? 근데 딸이 함께 드라마를 보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21세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바빠서. 아쉽지만 어쩌겠나. 본인의 삶과 딸의 삶은 분명 다른 것을. 그래, 그렇게 도면 설계하다 지우고 다시 그리고, 건물 세우다가 도면대로 되지 않는 공사 현장에서 좌절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인부들과 막걸리도 한 잔 하고 때로는 고성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너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렴. 바라기는 네가 만든 세상에 치열하게 땀 흘리는 바쁜 일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 호흡 고르면서 쉬어갈 수 있는 공원도 만들었으면 좋겠구나.
드라마 한 편으로 다시 돌아보는 부모의 역할. 정답은 없다. 세상 모든 부모가 처음부터 아빠 엄마였던 것은 아니니까. 좌충우돌 속에서 하나 둘씩 배우고 익혀나간 엄마의 역할,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할 생각 말고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더욱 엄마의 역할에 충실해야겠다. 난, 내 아이의 하나밖에 없는 엄마니까!
이상 미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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