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너희가 해야 하는 것은 닥치고 공부하는 거야. 성적이 너희 위치, 신분을 결정하는 거야. 꿈은 대학이나 일단 가고 나서 꾸든지 말든지"
무슨 소리냐고? 본인이 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아닌 경우도 있었겠지만 당시 본인이 다니던 학교의 분위기는 대략 이와 비슷했다. 이과에서 공부를 잘하면 의대, 문과에서 공부를 잘하면 법대를 가라고 추천받고.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적성에 맞든 맞지 않든 별 상관이 없었다. 그냥 적당히 성적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고르는 게 대부분이었다. 본인은 세대가 달라졌으니까 당연히 이제는 많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의 꿈과는 무관하게 성적이나 나중에 취업, 돈벌이 정도에 맞춰 진로를 선택하기를 강요받는 아이가 많았다. 사는 거 별거 없다. 다 이렇게 사는 거다 하는 비겁한 말과 함께.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자신을 애써 합리화시켰다.
믿기 어렵겠지만 본인은 아이에게 대학을 꼭 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학은 그저 선택일 뿐, 긴 인생에서 가도 되고 가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길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하고 키웠다. (한국 국립 S대를 다니는 아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면 재수 없다고 돌 맞는다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실 중학교 3학년 시기에 한창 사춘기가 절정이던 시기, 공부가 너무 힘들다던 아이에게 졸업까지 딱 2달이 남았으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딱 2달만 참고 다니고 졸업 이후 바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말고 1년 간 열심히 치열하게 놀고 쉬면서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까지 말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본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고 싶은 게 넘치고 욕심이 많던 아이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마냥 달리기만 하던 모습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정확하게 일주일을 고민해 보더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대학에 가야 할 거 같고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많은 기회와 경험에 노출되기가 쉬울 거 같다는 말과 함께. 아이가 결정한 말에 본인은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러면 앞으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생각해 보면 절정에 달한 사춘기와 중학교 마지막을 정리하는 시점, 첼로 국제 컨퍼티션 등이 겹쳐 아이 나름대로 투정을 한 것뿐인데 본인이 좀 심각하게 반응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생각은 반드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내 꿈은 무엇인지, 공부는 왜 하는지.
부끄럽지만 본인 역시 꿈과는 상관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전공하고 싶었던 사학을 부모님의 반대로 하지 못했고 이과와 문과를 넘나들며 방황을 했다.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방향 설정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만 했다. 소위 말하는 모범생에 우등생이었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물론 당시엔 그게 맞는 건지 알았다. 그렇게 배웠고 주위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요리로 치자면 어떤 재료든 일단 좋다는 건 무조건 다 넣고 보는 거다. 물론 어찌어찌 만들다 보니 맛이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건 확률상 너무 적다. 대부분 입에 넣기가 망설여지는 요상한 것과 대면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요리하는 과정을 충분히 즐겼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서툰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그럴싸한 요리를 떡 하니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거라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맞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소요되는 시간과 재료와 기타 등 가성비 대비 효율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GO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무작정 GO 하지는 않았을 테니. 나름 자신만의 무엇인가가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떤 음식을 만들고 싶은지.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만들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이 부분을 결정하고 나서 필요한 재료라던지, 도구, 방법 등을 생각하고 찾자. 아무리 재료가 훌륭하고 도구가 멋지고 방법이 현란해도 결론적으로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몸에 이로워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어느 분야든 먼저 눈 감고도 떡하니 차려 낼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나면 그 뒤 이를 바탕으로 응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응용이 먼저가 아니라 기본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퓨전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정통성 있는 무엇을 확립하지 않고 무턱대고 퓨전에 도전을 하다 보면 결국 어느 날 국적 불명의 이상한 음식만을 만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
말이 길었다. 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직도 답습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갑갑했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아이에게만은 강요하지 말고 함께 찾아보자. 나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스테이크가 보암직 먹음직하고 비싸게 팔 수 있다며 강요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나물 하나를 능숙하게 만들 줄 알면 그것을 응용하여 다른 나물도 만들고 나물 잡채도 만들고 나물 비빔밥도 만들고 나중엔 산채 정식까지 차려낼 정도로까지 이끌어 주는 게 어른이 할 몫이라 생각한다.
아이를 위한 책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아이가 읽기 전에 어른이 꼭 먼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잠시 수그러졌던 불꽃을 다시 한번 되살려 보았으면 한다. 먼저 자신의 열정부터 되찾자. 그래야만 펄펄 끓는 아이의 열정을 감당하고 더욱 불 붙일 수 있을 테니.
처음부터 정확한 목표 설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 대략 저 정도 어디쯤이라고 정한 뒤 조금씩 가다 보면 목표점이 확실하게 느껴질 거고 그때마다 단계별로 조절하고 수정하면서 조금씩 더 다가가면 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으니 방향만 정확하다면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빨리 도착하고자 만 하다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느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본인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한다. 자신의 삶을 인스턴트 음식으로 만들지 말자. 빠르고 쉽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번거롭고 복잡하고 때로는 생각했던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하나 준비하는 그 마음부터 식탁에 올려서 맛있게 먹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정리하는 순간까지 과정마다 충실하다 보면 분명 멋진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기를 꿈꾸며.
이상 미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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