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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이야기/아이를 키우며 도움 받은 책

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자존감

by 빠니미영 201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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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미 여름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한국도 대부분의 대학은 이미 종강을 했고 나머지 초 중 고도 곧 방학을 시작할 게다. 물론 방학을 시작해 봤자 아이는 다시 학원 순례를 시작하겠지만. 어쩌면 하루 24시간이 더욱 바빠질지도. 그동안 다니지 못한 학원까지 열심히 다녀야 하니까. 학원 다니는 것 자체를 뭐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본인의 아이 역시 고등학교 시절 2년 동안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들어가서 IB 학원을 각각 5주 동안 다니면서 3과목씩 수업을 들었다. (원래는 6주 코스인데 이곳의 방학이 늦게 시작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앞의 1주는 빠져야만 했다.) 필요하면 다녀야 한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본인이 아쉽거나 어려움이 있다면 학원이나 개인 레슨을 통해 배우는 게 맞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듯 보인다. 오죽하면 놀이터에 친구가 없어서 친구를 사귀려고 학원에 간다는 말이 나올까. 기저귀 차고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사탕 물고 수학 학원에 다니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도 영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본인은 확실히 교육에 관해서는 이방인, 외계인이 맞는 거 같다. 그런데 그 이방인, 외계인이 키운 아이가 나름 바람직하게 보이는가 보다. 주위에서 아이 키운 방법에 대해 공유해 달라고 하는 걸 보면. 글쎄, 잘은 모르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많은 사람이 바라는 S에 진학했다는 그것 하나만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닐 게다. (그러길 바란다. 간절히!)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컨데 단 한 순간도 S대를 목표로 한 적은 없었다. 해외에서 자라고 있으니 당연히 해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묘한 동경을 지니고 있던 아이는 어느 시점부터 한국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에 있는 대학을 선택했다. (영국에 있는 세계 랭킹 순위에 있는 대학을 마다하고 말이다.) 나중에 솔직히 말하더라. 한국에 있는 대학생은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미나게 열심히 노는 것처럼 보.였.다.고. (대학 생활을 어느 정도 해 본 지금 시점에선 말이 조금 바뀌었다. ^^;) 본론에서 좀 빗겨 나갔는데 어쨌든 아이를 키우면서 구체적으로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단지 작은(?) 욕심 하나는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 학생 대표로 하는 졸업 연설을 본인의 아이가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무렵부터 툭툭 내뱉듯 잊을만하면 말하고 또 잊을만하면 말하고를 반복했다. 사실 졸업식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왔으니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었다. 본인이 이런 욕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지인의 아이 졸업식에 여러 번 참석을 했는데 그때마다 졸업 연설을 모두 눈 파랗고 머리 노란 아이가 하는 거다.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아이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말한 것에 불과하다. 오해하지 말자.) 알아보니 한국 아이가 졸업 연설을 한 기록은 전무했다. 그때부터였다. 12년을 정리하는 '.'을 찍는 자리에 본인의 아이가 한마디쯤은 할 수 있게끔 아이를 키우자 라고 생각한 것이. 좀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나름의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준비를 하다 보니 정말 그 꿈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아이에 대한 꿈을 지니게 될 것이다. 건강하게 자라렴, 지혜롭게 자라렴, 착하게 자라렴 등. 큰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잘 자고 잘 놀고 이렇게 자라면서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게만 자라길 소망한다. 그러다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머리에 뿔 달고 벌겋게 변해 버린 도끼눈으로 아이를 윽박지르고 쥐어 박고 있다. 넌 도대체 왜 이 모양이니 하고. 윗집 옆집 아랫집 할 거 없이 주변의 아이는 모두 다 잘하는데 자신의 아이는 영 마땅찮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엄친아 엄친딸. 누구를 탓하지 말자. 자신이 그렇게 키운 거다. 말랑말랑한 아이를 누가 그렇게 딱딱하게 만들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자. 속된 말로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이다. 아이는 누구든 태어날 때는 백지상태다. 그 하얀 종이에 어떤 글과 그림을 쓰고 그려서 어떤 책으로 묶어낼지에 대한 책임이 아이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본인 역시 아직까지도 책 만들기는 진행 중에 있다. 감히 바라기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호흡을 하는 순간과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이 일치하기를 바랄 뿐이다. 미완성으로 남겨 두고 간다면 많이 아쉬울 거 같다. 물론 어느 순간이 지나서는 본인의 책은 오롯이 본인의 책임 하에 만들어져야겠지만 책이라는 게 어디 한 사람만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굳이 만들겠다면야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는 본인이 하겠지만 종이를 단단하게 묶고 제본을 하고 출판을 해서 유통을 하기까지에는 많은 이의 손이 필요하다. 그 많은 손의 역할에 부모인 우리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긴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아이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과연 그럴까? 본인은 본인의 아이를 아직도 모르겠다. 20년을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느끼며 키웠는데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저런 전문가가 쓴 이책 저책을 살피며 지낸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단순히 아이만을 키우는 게 아니라 본인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다음에 소개하는 책은 각각 2009년과 2011년에 나온 좀 지난 책이다. 막 책이 나온 시점에 구입을 해서 외우다시피 하며 읽었고 아이를 키우는데 제법 훌륭한 내비게이션이 되었던 책이다. 아이가 이미 대학생이 된 지금도 종종 들춰보고 있다. 무슨 클래식 고전도 아닌데 왜? 궁금한 사람도 있을 거다. 한 번 읽어 보길 권한다.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왜 아직까지 곁에 두고 읽고 있는지. 바라기는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좋은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혁명적인 책이라는 문구는 개인적으로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강한 임펙트 있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게다. 물론 달랑 이 책 한 권으로 자녀 교육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본인은 아이에게만 이 책을 적용하지 않았다. 본인을 들여다 보고 남편을 들여다 보는 데에도 적잖게 사용했다.

 

아이의 사생활에 이어 나온 책이다. 그동안 읽어 왔던 여러 책과 비교하며 열심히 메모하면서 읽은 책이고 현재까지도 읽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본인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내 안에 있는 어린 나. 어린 본인의 모습으을 보니 아이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분명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혼동하고 있다.

 

 

이상 미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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