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상영 중인 영화라 영화 자체 (연출, 연기 등) 에 대해 뭐라 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블로그에 본인의 생각을 끄적거리는 건 큰 지장이 없을 듯하여 몇 자 적어 본다.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에 봤던 '증인'이 오버랩 됐다. 주인공의 직업 (변호사) 과 아이 (물론 한쪽은 청소년이고 다른 한쪽은 아동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어쨌든 성인의 보호 아래 있는 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가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큰 축이라는 비슷한 점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연출이든 연기든 모든 것을 제외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어린 의뢰인'은 불편하지만 우리 모두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반드시 마주 봐야만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대한민국 아동 학대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본인은 '아동학대'에서 자유롭나?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단 한 번도 어른이라는 이유로,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를 학대한 경험이 없는지. 냉철하게 판단해 보길 바란다. 영화처럼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아동학대가 아니다. 언어폭력도 엄연한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본인은 70년대에 출생했다. 본인이 학생이던 국민학교 (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금은 불법이지만 당시엔 합법적이었던 '교육을 위한 체벌'이라는 게 존재했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그런데 이 사랑의 매가 가끔 정도를 매우 지나쳤다. 주로 맞는 부위였던 허벅지 부분은 맞고 나면 며칠 걷기가 어려은 것은 당연하고 당장 바지를 입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고, 손바닥을 맞았을 경우에는 식사를 위해 수저를 드는 일상생활까지 지장이 있을 정도였으니. 들어보니 그래도 여학교는 그나마 체벌 강도가 좀 덜했던 것 같다. 남학교는 맞다가 잠깐 기절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하니. 맞는 학생도 괴로웠지만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학생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과연 학교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야 말로 남들 시선에서조차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더욱 자유로울 수 있어서 강도가 더 심했다. 체벌하는 도구도 참 다양했다. 이렇게 말하니 본인이 상당히 많이 맞고 자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본인은 감사하게도 이런 물리적 언어적인 폭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컸다.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그럴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가끔 부모님으로부터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까지 언어적인 폭력, 아동 학대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동은 보통 청소년 이전 그러니까 초등학교까지의 아이를 대상으로 말하지만 아동학대에서 취급하는 아동의 개념은 18세 미만의 사람을 말한다. 즉 성인이 18세 미만의 사람을 물리적, 언어적인 힘을 가해 가혹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폭력의 문제성는 매우 많지만 그중 하나는 '대물림'이다. 영화 대사 가운데 가슴을 때린 말이 있다. '나도 엄마가 뭔지 모르는데 어떡하라고' 극 중 지숙이 한 말이다. 엄마는 장 봐 와서 밥 해서 먹이고 머리 빗기고 옷 사 입히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지숙이 생각하는 '엄마'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숙은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지나지 못했을 확률이 커 보인다. 지속적인 폭력에도 노출이 되었을 확률 또한 높다. 그 자신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끝없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없다고 해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이 아니었다고 해서 모두가 폭력적이고 삐뚤어진 모습으로 살아 가지는 않는다. 분명 어렵고 쉽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본인은 생각하고 믿는다. 시종일관 방관자라는 일관된 모습으로 그려진 아빠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직접적인 폭력적 모습은 보여주지 않지만 방관 역시 폭력 못지않은 행위이다. 아빠와 다르지만 방관이라는 부분에서는 동일한 이웃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요즘엔 개인주의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본인도 개인주의를 지양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책, 문유석 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얼마나 속이 시원하고 통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개인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유석 판사가 말하듯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이지만 옆집 윗집 아랫집에서 누가 살든 죽든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그런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곤란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부모는 반드시 준비를 한 상태에서 되어야 하는 것이다 라고. 하다못해 대학이라는 문턱 하나를 넘기 위해서 초 중 고 12년은 당연하고 젖먹이 아가 시절부터 A B C D 를 배우고 구구단을 외우는 요즘인데, 부모가 되어 한 인격을 이끌어 나감에 있어서는 너무 용감할 정도로 어떤 준비도 하지 않는 듯싶다. 물론 예전과는 다르게 열심히 준비하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그 인원과 노력이 아직까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만 한 듯 싶다. 거창한 그 무엇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단 자신부터 바꿔서 주위를 밝게 하고 그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간다면 언젠가는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조금은 덜 험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전부다. 우리 모두 적어도 아이보다는 이 세상에 일찍 나왔고 먼저 살았으니 제대로 된 부모, 사회의 선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다. 혹시 자라는 동안 제대로 된 본보기를 보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좀 더 긴 시간을 살아 온 우리이니만큼 의식적인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갔으면 한다.
영화 한 편 달랑 보고 무슨 사족이 이리 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동의 한다. 아이를 키우는 (물리적인 양육은 이제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보다 보니 감정이입이 좀 지나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에 관한 소식,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소식이 더 이상 새롭거나 이상하지 않은 요지경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영화 한 편으로 별의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심각한 내용 말고 단순하고 잠시 웃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유난히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아래 링크는 아동학대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인데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한 번씩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이상 미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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